포틀랜드 일년살이

영화 관람, 라이언 킹 무파사의 사자후

세상의 끄트머리 2024. 12. 27. 15:25

크리스마스 이튿날 브릿지포트 몰에 있는 영화관에서 라이언 킹 ‘무파사‘를 관람했다. 지난 번 영화관 관람 경험이 있기에 여유 있게 예약하고 12시 관람 시간에 맞추어 영화관에 도착했다. 오전 시간대에는 여전히 사람이 거의 없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답게 가족 관람객 몇 그룹이 자리를 잡는다.

나와 제이는 쉬운 영어 대사와 사실 같은 풍경과 주인공 동물들의 움직임에 몰입하였으니, 케이는 재미 없다며 눈을 감아 버린다. 나 역시도 한국어 더빙이나 자막으로 보았다면 이야기 자체는 시시해서 하품을 쉴 수도 있었겠지만, 들릴락 말락한 쉬운 영어 때문에 뻔한 이야기 구조가 오히려 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쯤 못 알아 들어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니 좋다. 마지막에 갈기가 채 형성되지 못한 어린 사자 무파사가 우렁찬 ’사자후‘ 한 번 만으로 온갖 동물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건 무슨 마법일까. 아마도 놓친 내용에 실마리가 있겠지.

최근 디즈니는 ’선과 악’이 원래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서사를 제시하려 노력하는 듯 한데, 그러기에는 주인공들이 너무 전형적이다. 과정은 복잡하고 우연적이지만 결과는 전통적인 선-악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전작을 보지 않아서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마지막까지 갈팡징팡 선택을 한 무파사의 심적 형제인 ‘스카’는 결국 전형적인 ‘악당‘이 될 것이다.

영화를 보고 캘리포니아 피자 가게에 들러 피자를 시켜 먹었다. 피자를 시킬 때면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고민하게 만든다. 미국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으면 혼자 먹는 크기인 듯 하다. 피자 두 개와 샐러드를 시켜서 배불리 먹었다. 미국 온 지 일년이나 지났지만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직원들은 빠른 속도로 말을 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냥 짐작하고 대답하고 서비스를 받는다. 눈치만 늘었다. 

집에 돌아와 유튜브로 뉴스를 볼 때, 계엄, 내란, 탄핵이라는 한국 정치 상황이 디즈니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하나 싶어 씁쓸하다. 이러니저러니 핑계를 대면서 서사를 만들면 뭐하나, 그대들은 이미/결국 국민을 배신한 ‘악당’ 역할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충실하게. 어디 가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아, 계엄(martial law). 너는 괜찮니?”라고 물어보는데 이을 말이 없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네들이 귀를 막고 고개를 돌려도 국민의 ‘사자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자. (202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