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벽시계가 아니라 새가 그려진 벽시계다.
십년 전쯤 스웨덴에 출장갔을 때 크리스티안스타드 에코뮤지엄 기념품샵에서 구입했다. 크리스티안스타드 에코뮤지엄은 스웨덴 남부 헬게강 하구에 위치한 폐적치장을 생태복원하며 만든 환경교육관을 중심으로 지역 내 여러 주요한 생태지점들을 연결해 조성하였다. 환경교육관에 근무하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 여러 생태지점을 안내받으며 본 많은 새들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해외 출장길에 구입하기엔 너무나 큰 벽시계를 덜컥 구입해버렸다.
처음엔 집에 걸어두었다. 시간대별로 아마도 북유럽에서 자주 보는 새들이 그려져 있다. 한 시간마다 해당 새의 울음소리가 나온다. 신기하여라. 새 모습을 눈으로는 조금씩 구별할 수 있어도 12시간마다 한번씩 듣는 새소리는 기억하기가 어렵다. 요새 회사 주변을 탐조 명목으로 산책할 때도 마찬가지. 여전히 그 소리가 그 소리 같다. 한 동안 잘 들었으나 가족들이 밤 새 한시간에 한 번 울리는 새 소리를 참지 못한다. 새 소리 기능을 꺼놓았다.
이사를 가느라 벽시계 걸 곳이 없어져서 회사로 가져와 걸어두었다. 여기서는 마음껏 새 소리를 즐겨도 좋더라. 하지만 끊임없이 잘 울던 벽시계의 새들은 몇 년이 지나자 고장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마치 귀신 새 소리처럼 들린다. 어쩔 수 없이 소리 기능을 꺼버렸다.
포틀랜드에 다녀오니 일년 동안 새 그림이 하얗게 바래버렸다. 주인이 없다고 마음이 떠난 것이냐. 더이상 새 소리로 유혹할 수 없으니 몸과 영혼이 밖으로 밖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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