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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 고르고 고치기

에릭 와이너, <천재의 지도>

지난 주엔 국회토론회 토론문과 신문 칼럼 원고를 쓰느라 신경을 썼더니 무거운 책을 피하고 싶었다. 책장을 둘러보니 에릭 와이너가 2016년에 지은 <천재의 지도>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다. 2018년에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가 2021년에 <천재의 지도>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나왔다. 출판사는 문학동네. 잘 몰랐는데 에릭 와이어는 <행복의 지도>, <신을 찾아 떠난 여행>,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 등의 책을 썼고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라 한다.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며 철학자의 삶을 연결시켜 유머있게 살짝 비틀거나 비꼬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철학을 공부하고 기자 생활을 경험한 책 쓰는 여행가인가.

<천재의 지도> 머리말을 넘기며 정말 깔깔대며 웃었다. 블로그에 포틀랜드 일년살이를 쓰면서 내가 도달하고 싶었던 스타일을 만난 듯 했기 때문이다. 관찰을 하고, 흔하게 듣지 못했을 여러 이야기들을 모으고, 그럴 듯 하게 버무리다가, 글 쓰는 자신이나 글 읽는 독자들이 당황할 수도 있는 질문을 은근슬쩍 던진 후, 깊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글을 이어간다.

천재(genius)는 라틴어 ‘게니우스’에서 온 단어이다. 게니우스는 초능력을 가진 헬리콥터 부모처럼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램프의 요정 지니와 같은) 수호신을 말한다. ‘창조적인 행위에서 발현되는 지적 능력’이라는 요즘의 정의는 예술 때문에 고통받은 우울한 시인들을 일컫는 18세기 낭만주의의 산물이다. 이 책은 요즘의 천재 정의를 따르지만, 창조적인 천재들이 많이 태어나 활동한 도시에 가보면 ‘게니우스’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 희망해 본단다. 왜 천재를 연구하냐는 질문엔 아이들의 창의성을 북돋는 게 가족 문화이니 이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내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어하는 독자들 꾀는 이야기로만 들린다.

저자가 천재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는 도시는 아테네, 항저우, 피렌체, 에든버러, 콜카타, 음악도시 빈, 소파 위의 빈, 실리콘밸리다.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천재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는지 슬쩍 물어보고 대답을 듣는다. 양념이다. 대단한 답을 듣지도 못하고 저자도 대단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깊이 생각하지 말고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사이사이를 즐겨보자. 중간중간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시민의로서의 삶을 의무(duty)가 아니라 기쁨(joy)에 가깝게 받아들였다거나,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발명한 게 아니라 외국의 아이디어를 기꺼이 빌리거나 훔쳐서 아테네화 했다거나, 심포지엄은 ‘함께 마시다’라는 의미로 포도주를 마시며 게임, 음악, 무희, 여흥을 즐기는 행사(향연)이었고 너무 취하면 안 되기에 물과 포도주를 5대 2의 비율로 섞어 제공했다거나 등.

읽다보니 에릭 와이너의 재기발랄한 문체는 짧은 블로그 글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지만 한 번에 책을 완독할만한 끈질김이 없다. 비꼬거나 비트는 문장과 문단을 계속 만나다보니 다음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리저리 튀면서도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은 편집자의 힘일까. 마지막 문단. ‘교차로’라고 한다. 천재가 사는 장소, 게니우스 로키. (2025.3.31.)

“이 교차로는 여느 교차로처럼 위험하고 인정사정 없는 장소다. 주의를 기울이고 걸음을 늦추고 저기 바보들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교차로는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고대 아테네든 서니베일의 상점가든, 초라한 교차로야말로 진정한 게니우스 로키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사는 장소.”

마지막까지 모두 읽었다. 며칠 전 점심을 먹으며 동료에게 이 책 제목을 말하자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지 도시가 천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바로 응답한다. 저자의 말을 빌려 특정 장소와 시기에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타나는 이유를 따져보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그럴 듯 하다고 수긍한다. 그러고보면 에릭 와이너는 책 제목과 주제만으로 천재가 유전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있는 것일테다. 머리말을 넘어 1장(천재는 단순하다: 아테네)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미 저자가 그려놓은 이야기 그물에 빠진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도시들을 지나 8장(천재는 약하다: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천재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소개된다. 대부분 천재나 창의성에 대한 말들이다. 이를 도시와 장소의 특징으로 연결시키려 노력한 저자의 끈질김에 박수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은 자신의 도시와 장소가 그런 특징을 어떻게 지닐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볼 것. (2025.4.6.)

금전적 보상이나 평가에 대한 기대는 아마추어의 창의력을 억누르지만 노련한 창작자에겐 동기 부여가 된다. (48쪽)
천재는 시대와 빈틈없이 맞물리느냐가 아니라 … 겉보기에는 들어맞지 않는 것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 (61쪽)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는 혁신은 결코 혁신이 아니다. 인생사가 다 그렇듯 천재성의 관건은 타이밍이다. (117쪽)
천재를 낙오자와 구분 짓는 특징은 몇 번 성공하느냐가 아니라 몇 번이나 다시 시작하느냐다. (125쪽)
천재는 나머지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을 보지만, 뭔가 다른 것을 본다. … 익숙해지면 더이상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렇듯 지각이 흐려지는 일을 피하고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들” 수 있다. (133쪽)
“상당한 창의적 잠재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너무 쉽거나 편한 과제를 내면 창의성을 꺽을 수도 있다.” (146쪽)

완고한 신화가 있긴 하지만, 천재는 신이 아니고 그렇게 믿는 체하는 것은 우리에게나 그들에게나 몹쓸 짓이다. (163쪽)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질문에 대답한다. 문제를 찾는 사람은 새로운 질문을 발견한 다음 그 질문에 대답한다. 천재를 구별하는 특징은 정답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질문이다. (178쪽)
완벽한 초고를 써내는 작가, 한 손에는 포도주 잔을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캔버스에 오일을 뿌려 뚝딱하고 걸작을 만들어내는 화가 같은 존재는 없다. 죄다 거짓말이다. (187쪽)
감히 알려고 하고 그 앎에 따라 감히 행동하려고 하라. 이것이 스코틀랜드 방식이었다(228쪽).
로선버그는 야뉴스적 사고를 “둘 또는 그 이상의 상반되거나 반정립적인 개념, 이미지 또는 관념을 동시에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창조적인 사람들은 야뉴스적 사고에 남달리 강하다(240쪽).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창조하려면 누군가 자신의 창조를 고맙게 받아들이리라는 굳은 신념이 있어야 한다. 창조는 지금 순간뿐 아니라 다가올 순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249쪽)
내 생각에 천재는 일반인보다 자이가르닉 효과에 더 민감한 듯 하다. 그들은 미해결 문제를 맞닥뜨리면 그걸 해결할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창조적 천재를 설명하는 특징은 출처가 불분명한 ‘깨달음의 순간’보다는 이 끈기다. (254쪽)
보완적 천재란 명석한 정신을 가진 자가 명석한 정신을 가진 또다른 자의 단점을 메우는 일을 말한다. (255쪽)
“재능이 뛰어난 자는 아무도 맞히지 못하는 표적을 맞히지만 천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표적을 맞힌다.” (259쪽)
연구에 따르면 창의적인 사람들은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 남달리 뛰어나다고 한다. 천재의 장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아테네와 피렌체, 에든버러 같은 도시에서는 모호함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찬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280쪽)
순수한 천재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천재에게 순수한 면은 아무것도 없다. 천재는 빌리고 훔친다. 물론 거기에 자신의 재료를 섞긴 하지만, 순수함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297쪽)
창의적인 사람은 혼란을 수렁이라기보다는 정보의 광맥으로 본다. 물론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지만, 언젠가는 이해가 될지도 모른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최선이다. (306쪽)
창조성은 이제 앎의 문제가 아니라 바라봄의 문제다. (317쪽)
천재의 장소는 결코 녹록지 않다. 벵골 르네상스가 일어난 것은 콜카타가 살기에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다.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니어서 일어났다. 창조적 번성은 늘 그렇듯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331쪽)
모차르트는 조물주의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음악 생태계의 일부였는데, 이 생태계가 어찌나 풍요롭고 다양했던지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결국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339쪽)
왜 역사책에는 여성 천재가 그렇게나 전무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세상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72쪽)
영감은 아마추어에게나 쓸모 있다고들 한다. 진정한 창조성을 발휘하려면, 영감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책상이나 피아노 앞에 앉아야 한다. 하이든이 그랬다. (376쪽)
성공적 실패자는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실패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기에 겉보기에는 다를지라도 같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이 ‘실패 색인’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검색한다. … 천재의 방식은 ‘기억하고 계속 나아가거라’다. (418쪽)
신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신화는 목적에 부합한다. 신화는 영감을 선사한다. 신화가 전무한 사회는 창조성도 없을 것이다. 실리콘배릴에서 무엇보다 뿌리깊은 신화인 무어의 법칙을 생각해보라. … 무어의 법칙은 결코 법칙이 아니다. 사회적 계약이나 목표, 모질게 말하면 채찍이다. 하지만 이것을 중력의 법칙처럼 확고부동한 ‘법칙’으로 규정함으로써 무어와 그 계승자들은 가능성을 기대로, 필연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훌륭한 마법이자 실리콘밸리 최고의 혁신이다. (483쪽)
무익한 신화에 매달리면 창조성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특히, 고독한 천재라는 신화는 우리를 기운 빠지게 한다. 직원들이 “더 창조적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한 워크숍에 기업들은 돈을 쏟아붓는다. 대견한 일이긴 하지만, 그들의 업무 환경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려 있지 않는다면 헛수고로 끝날 것이다. (4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