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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물, 쓸모 없음의 쓸모

빔 밴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

포틀랜드에 있을 때 넷플릭스에 올라온 <퍼펙트 데이즈>를 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보지 않았다. 넷플릭스 영화 소개란에 적힌 ‘청소부의 소박하고도 충만한 일상’이라는 표현이 주는 무게감.

포틀랜드에서의 일상생활은 (한국에서의 일상생활과 비교할 때) 멀리 여행가는 특별한 며칠을 제외하곤 지극히도 소박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별 것 아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한국에서 받는 수준의 연봉만으로는 절대 버틸 수 없는 포틀랜드의 일상을 소박하고도 충만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왜 <퍼펙트 데이즈>를 보지 않았을까. 그냥 심심한 일상을 더 심심하게 만드는 영화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같은 일상을 다르게 보도록 만드는 위험한 영화일 가능성을 경계했을 수도 있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올림픽 홍보용으로 새롭게 조성한 공중 화장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로 기획되었지만 빔 밴더스 감독과 연결되어 3주 만에 시나리오를 만들고 3주 동안 촬영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신기하게 생긴 도쿄 시내 공중화장실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라는 나이든 남자이다. 히라야마는 없는 듯 취급받는 그림자 노동을 정말 정성스럽게 행한다. 단 한번 어쩌다 하는 정성이 아닌 한결같은 정성. 같이 일하는 후배의 질문, 이 일이 좋아요? 대답하지 않는다. 노동뿐일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캔 커피,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로 듣는 6, 70년대 노래, 아마도 편의점에서 샀을 듯한 샌드위치와 우유 한 팩으로 때우는 도심 속 절에서의 점심 식사, 퇴근 후 동네 목욕탕에서의 십 분 간의 목욕과 동네 식당에서의 저녁 겸 술 한잔, 자기 전 독서와 출근 전 화분 가꾸기까지 한결같다. 쉬는 날이 주말인지 주중인지 하루인지 이틀인지 알 수 없지만, 쉬는 날엔 쉬는 날의 반복되는 일상이 있다. 이 반복되는 별거 아닌 소박한 일상 속에서 과묵하고 무표정한 히라야마는 이따금 미소를 짓는다.

영화는 매일의 일상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촬영하고 편집하여 반복해 보여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반복되는 생활이 언제 충격을 받아 깨질 것인지 조마조마했다. 이게 뭐라고 조마조마할까. 자판기가 고장나거나 캔 커피가 다 팔려 없거나 차 카세트 오디오가 고장나거나 공중화장실 공구 열쇠가 사라지거나 자전거를 도둑맞거나 목욕탕이 문을 닫는다거나 등등. 영화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을까? 대답하지 않겠다.

반복을 깨버리는 사람들은 있다. 공중화장실 청소를 같이 하는 젊은 청년이 느닷없이 여자친구를 불러 퇴근길을 방해하고 조카가 찾아와 아침 화분가꾸기를 방해하며 낯선 남자가 찾아와 주말 저녁마다 가는 식당 주인을 방해한다. 보통 사람들의 엉망진창 삶이라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별거 아닌 끼어듦이다. 주인공 히라야마에게도 별거 아닌 끼어듦이었을까. 아니면 히라야마는 방해받은 평온에 놀라고 짜증내며 폭주할까? 아니다. 히라야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살짝 미소지으며 방해받은대로 그렇게 흘러간다. 아니다. 그런 느닷없는 마주침을, 아주 작은 변화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반복되는 삶을 살다보면 작은 변화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듯 하다. 그 정도의 변화면 충분히 흥미롭다는 듯.  

우리는 어느 정도의 변화를 알아차릴까. 소란스런 세상에서 목소리 내고 사느라면 작은 변화는 무시하고 지나쳐야 하는게 아닐까. 우리가 새롭게 인지하거나 흥미로워할 정도의 변화라면 얼마나 자극적이어야 할까. 그런 일을 혼자 알아차리고 살짝 웃고 넘어가고 싶을까, 아니면 남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일까. 내가 포틀랜드의 일상을 비밀 일기만이 아닌 공개된 블로그에 쓰는 것처럼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을까. 하지만 주인공 히라야마에겐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소박한 일상과 그 속에서 발견한 작은 변화에 호응해줄 사람이 없다. 작은 변화의 순간을 찍은 흑백 사진은 상자에 보관된다.

소중하다. 반복되는 일상도, 작은 변화도, 우연한 마주침도, 이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도. 하루야마는 화장실 거울 틈에 끼인 쪽지에 응답해주었고, 젊은 동료의 여자친구에겐 카세트 테이프의 노래를 다시 들려주었고, 엄마와 싸운 후 집을 나온 조카에게 “나중은 나중, 지금은 지금”이라고 답해주고, 내심 좋아하는 식당 여주인을 찾아온 전남편과 철학적 대화를 한 후 그림자 밟기를 한다. 미처 응답해주지 못한 사람도 있다. 화장실 근처에서 묘한 춤을 추는 아마도 홈리스인 듯한 노인과 도심 속 절에서 뭔가 불안해하며 점심을 먹는 젊은 여인. 집 나간 조카를 찾아온 귀부인 같은 여동생, 정말 화장실 청소일을 하는거냐고 묻는 여동생에게 한 포옹도 나름의 응답이었을까.

마지막 장면. 출근하는 차 안에서 주인공 하루야마의 얼굴을 길게 잡는다. 어, 눈이 빨갛구나. 울음을 참는 것인가. 살짝 미소짓는 것 같은데 슬픔을 이기지 못한 억지 미소인 것인가. 영화를 한 번 더 보아야할 이유.


그러고보니, 영화 홍보 자료에 나온 히라야마가 입고 있는 옷,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옷을 나는 우리나라의 생활 한복과 비슷한 일본의 생활 전통복장이라 생각했었다. 청소복인데. 나만 그렇게 착각한 것인지 감독의 의도가 섞인 것인지 모르겠다. (202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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