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칼칼하다.
포틀랜드의 겨울과 초봄은 항상 비가 내리지만 하루에 몇 시간 구름 사이로 드러난 새파란 하늘 덕에 우울함을 벗을 수 있었다. 늦은 봄과 여름과 가을의 항상 맑은 하늘은 쾌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산불이 크게 번지는 건조한 여름을 제외하곤 집 근처 공원이든 하천변이든 바닷가든 산 속이든 숨 쉬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때문에 대체로 (이번엔 특수한 상황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짧은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미세먼지를 가장 걱정한다.
몇 년 사이 국내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주변에 산이 있다면, 굳이 미세먼지 측정앱을 보지 않더라도, 저 산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로 오늘의 대기질을 가늠해볼 수 있다. 서울이라면 남산N타워가 알림이가 될 수 있겠다. 에구 오늘도 안 보이는군.
나이가 들면서 나도 동료들도 점심 시간을 이용해 30분 이상씩 걷는다.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연구직들은 이 때가 아니면 걸을 일이 없기도 하다. 건강을 생각해 걸어야 하는데, 30분을 야외에서 걷고 나면 목이 간질간질, 마른 기침을 계속하게 된다. 산이 보이지 않을 때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추운 날씨를 좋아하지 않지만, 북극의 찬 공기가 러시아를 거쳐 한반도로 내려오는 그런 추운 날에는 그나마 파란 하늘을 볼 기회가 많다. 물론 너무 추우면 전기와 열 사용이 늘고, 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석탄발전소나 LNG발전소가 더 열심히 일을 할테니,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수 있다. 날이 따뜻해지는 요즘에는 중국에서 바다를 넘어 한반도에 내려 앉은 오염물질이 국내 오염원에 더해질 터이다. 저 높은 곳의 바람이 힘을 내어 동해를 건너가도록 빌어야 할지도. 힘내라 바람. 햇빛이 강하면 대기오염물질들이 미세먼지로 더 쉽게 바뀐다. 햇빛, 너에게 무슨 죄가 있겠니. 하지만 오늘이 그런 불평을 듣는 날일지도.
콜록콜록. 봄을 알리는 꽃을 반기는 마음과 산 경관을 가리며 콜록콜록을 불러오는 미세먼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점심 때 꽃보며 걸어야 할까 말까. 아파트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날을 가리지 않고 하천변을 뛰어다니는 저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러고보니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나쁜 날 수치는 발표되지만 공기 맑고 하늘 파란 좋은 날 수치는 발표가 안 된다. 좋은 날 목표도 세워 보자. 산책해도 좋은 날, 산책하기 좋은 날, 산책 안 하면 억울할만큼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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