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2025.6.19.)부터 일요일(6.22.)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제8회 국제해양영화제'가 열렸다. 동료들과 함께 목요일 개막 작품과 금요일 오전 중단편 기획 상영 작품을 보고 왔다.
최근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다녀온 이후 국내에 비슷한 영화제가 있으면 동료들과 함께 가보면 좋겠다 싶어 찾아봤다. 국제환경영화제로 검색하니 부산에서 열리는 '하나뿐인 지구영상제'라는 이름의 환경영화제가 소개된다. 2022년부터 (사)자연의권리찾기라는 단체와 (재)영화의전당이 주최/주관하고 있으며 올해는 8월 21일부터 25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하지만 행사 홈페이지(https://www.blueplanet.or.kr/2025/main/)에는 아직 상영 영화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지 않았다.
좀 더 찾아보니 '국제해양영화제(Korea International Ocean Film Festival)가 검색된다. 2015년 'Sea & See'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시작하여 2018년부터 '국제해양영화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고 한다. 생각보다 오래 되었다. 아마도 올해부터는 부산시와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원을 받아 행사가 좀 더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나보다. 개막식에서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은 바다를 주제로 하는 연극제, 음악회 등의 문화 행사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 행사 범위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도 싶다.
우리는 목요일 개막작인 '소피아의 상어 이야기(Her Shark Story)'와 금요일 오전 'Beyond the Break: 한계를 넘어'라는 제목의 기획에 포함된 세 편의 중단편 영화를 관람하였다.
'소피아의 상어 이야기'는 칠레의 영화감독인 이그나시오 워커(Ignacio Walker)와 데니스 아르케로스(Denis Arqueros)가 제작하였다. 이그나시오 워커 감독은 칠레의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찍기도 했다. 소피아의 상어 이야기는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섬에서 고래상어의 생태를 연구하는 해양생태학자인 아버지와 딸(Sofia Green)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세계 곳곳을 탐험하고 여행하기도 했지만 현장 연구를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소피아가 아버지가 하는 고래상어 연구에 동참하면서, 더 나아가 갈라파고스 남쪽 바다에서 자신만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해양생태학자의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고래상어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고래상어의 등지느러미에 태깅(위성 추적 장치 부착)을 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고,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는 고래상어를 찾아서 헤엄쳐 다가가서 태깅하고 위성 정보를 분석해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연구비 마련을 위해 아버지는 탐험 및 여행 가이드를 해 왔으며 소피아도 마찬가지로 오프 시즌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태깅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태그가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때에는 태그의 위치가 내륙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어선의 그물에 포획된 후 풀려나지 못하고 육지까지 끌려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소피아의 울음. 국내에서도 제주도에서 2012년 그물에 걸려 포획된 고래상어를 생체태그를 붙여 방사한 사례가 있지만 두 달만에 신호가 멈췄다고 한다.
개막식이 쓸데 없이 길어지는 바람에 영화 상영이 끝나니 벌써 저녁 8시 30분. 이어지는 감독과의 대화(GV)를 듣고 싶었으나 다들 저녁을 거른 상태라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상영관을 빠져나와야 했다. 아마 해외에서는 GV라는 표현이 아니라 단순하게 Q&A라는 표현을 쓰는 듯하다.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니 다른 영화제에서 감독의 Q&A 장면이 올라와 있다.
해양생태학자들의 실험만큼이나 촬영진들도 고래상어에 태깅하는 장면을 찍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감독도 15살 때부터 칠레에서 다이브를 했지만 칠레의 바다는 차가워서 상어를 만나기는 어렵다고 한다. 감독은 영화를 찍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고래상어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촬영 시 고래상어가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서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고. 갈라파고스에는 고래상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상어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소피아가 상어는 무섭지 않다고, 바다에 뛰어들어도 된다고 용기를 불어넣었다고 한다. 누군가 총 촬영 분량을 묻는다. 90시간, 이를 두시간 분량으로 일차 편집, 90분으로 줄이고 다시 75분 분량으로 정리. 감독은 국립공원 등의 자연을 담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지만 항상 자연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려했다고 말한다. '소피아의 상어 이야기'도 마찬가지. 소피아 가족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관객도 있다. 소피아의 어머니가 관객 가족의 갈라파고스 여행을 처음으로 조직했고, 첫째 딸이 그 영향으로 다이버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도 잠깐 등장한다고. 영화 홈페이지(www.hersharkstory.coom)에 들어가면 소피아의 연구를 후원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고.
금요일 오전에 들어간 'Beyond the Break: 한계를 넘어'에서는 세 편의 중단편 영화가 연속해 상영되었다.
첫번째 단편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Sinai Pennisula) 남동쪽 해안가의 바닷마을 다합(Dahab)에서 카이트 보딩(Kite Boarding)에 도전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감독은 카일리 자르마이(Kylie Zarmai). 다합이라는 마을은 홍해에서 스노쿨링, 프리다이빙,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바람 위에 선 그녀, 파도를 넘다'라는 한글 제목이 멋있기는 하지만 간결한 영어 제목( (Above Sinai) 에 비해 과하긴 하다. 감독이나 영화제 기획자의 의도라면 주인공은 파도를 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이집트 문화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고 싶어한 것이 아닐까. 나는 카이트 보딩이라는 해양스포츠는 처음 봤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나 보다. 부산 다대포에서도 카이트 보딩 또는 카이트 서핑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 단편은 상어에게 물려 한쪽 다리를 잃은 다이버(Caleb Swanepoel)가 다시 바다로 들어가 상어를 만나는 이야기다. 한글 제목은 '상처 너머의 바다로'이고 영어 제목은 'Caleb - Beyond the Bite'이다. 백상아리에 물려 다리 하나를 잃었으나 살아남은 다이버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백상아리와 같이 헤엄치는 것이 진정한 치유라는 것일까. 상어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해답이지만, 주인공은 영화 내내 상어는 무섭지 않다고 이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 관련 홈페이지(https://sharksunderattackcampaign.co.za/who/)에는 상어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된 정보와 정책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면서 WHO(세계보건기구)에 보내는 편지를 볼 수 있다.
세 번째 중편은 수심 100미터 딥 다이브에 도전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이야기다. 제목은 '101 - 인간의 한계 수심 100m에 도전한다'이고 방송국 예능 PD이자 프리다이빙 강사인 김동욱 감독과 방송국 예능 작가이자 부인인 구소연 작가가 만들었다. 영화가 끝난 후 조하나 국제해양영화제 조직위원장이 감독과 작가와 함께 감독과의 대화(GV)를 진행하였다. 국내에서 100m 이상의 깊이까지 도달한 선수는 두 명.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40대 일반 직장인이 한국 기록을 넘어서겠다고 도전하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다. 영화가 되겠군. 하지만 첫 번째 도전에서 실패한 이후 감독은 (비용과 시간 문제를 포함해서)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첫 번째 실패 후 대회 장소를 옮겨 바로 두 번째 도전을 이어가기로 결정한다. 감독은 두 번째 도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주인공과 다이브 팀은 고프로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 감독에게 보내준다. 또 한 번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담긴 그 영상을 담아 영화가 완성되었다. 두 번째 도전은 성공했을까?
이미 활성화된 국제영화제도 좋지만 기후와 환경을 다루는 영화제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보통 집에서 TV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볼 땐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영화제에서는 화면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를 제작한 동기, 의도, 어려움, 영향 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번 국제해양영화제에서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주제와 관련된 전시나 세미나를 함께 열 수도 있다. 바다를 여러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바다를 보호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이야기가 삶과 일,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를 비롯해 미술, 연극, 소설, 음악 등 문화를 기획하는 이들과 생태, 환경, 기후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만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영화제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면서 나온 이야기와 정보들을 묶어서 책자로 묶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제8회 국제해양영화제의 주제인 ‘바다가 닿는 곳(Where the Sea Touches Us)’이라는 문제의식이 해양 정책까지 이어질 수 있는 통로와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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