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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일년살이

트라이언 크릭 공원, 벌목의 흔적인 그루터기 찾기

by 포틀랜드 일년살이 2024. 12. 19.

비가 그친 날 트라이언 크릭 공원에 다녀왔다.

오늘은 이전과 달리 센터에서 출발하지 않고, 지난번에 잠깐 들른 분스 페리 다리 하천복원 지점에 가까운, 노스 크릭 트레일헤드에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트라이언 크릭의 물 소리를 들으며 질척한 길을 걷다보면 나무가 잘려나간 흔적들을 볼 수 있다. 1960년대까지 이어졌던 벌목의 생생한 기록이다. 오늘의 관찰 테마는 그루터기로 정했다.

트라이언 크릭 공원 지역에서는 1800년대 말까지 나무를 베어 통나무 숯을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숯은 레이크 오스위고 조지 로저스 공원에 남아 있는 용광로에 사용되었다. 통나무 숯을 마차에 싣고 나르던 길이 공원 남쪽 끝자락에 있는 아이언 마운틴 트레일이다. 이 트레일을 걷다 보면 과거에 숯을 만들던 장소라는 표지판도 볼 수 있다.

제철 산업이 쇠퇴한 후 한동안 벌목이 중단되었으나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철로 버팀목 용도로 벌목이 다시 시작되었고 1960년대에도 목재 용도로 간간히 벌목이 이어졌다고 한다. 공원 중간쯤에 있는 오비스 다리(Obie’s Bridge) 근처에는 벌목한 나무를 쇠사슬로 엮어 끌고 오는 동력 장치가 설치되어 운용되었는데, 지금도 물이 없는 여름엔 물 길을 가로지르는 쇠사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태 그 사실을 몰라 어린 연어나 송어가 있는지 없는지만 살폈을 뿐이었다.

1900년대 들어서는 모든 나무를 한 번에 다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베어내는 방식으로 벌목이 진행되었기에 빅 퍼 트레일(Big Fir Trail)처럼 큰 나무들이 아직 남아 있는 구간도 있다.

그루터기를 보면 지면에 가까운 밑둥이 잘린 나무도 있지만 성인 키보다 높은 지점이 잘린 나무들도 여럿 볼 수 있다. 여러 이유들이 제시되는데 두 가지가 유력하다. 첫째는 나무 밑둥에 송진이 몰려 있어 이 부분을 자르면 톱날에 송진이 뭍어 작업을 계속 할 수 없기에 윗 부분을 잘랐다. 둘째는 뿌리와 가까운 나무 밑둥은 직경이 넓어 사람이 직접 톱질할 때 시간과 노력이 세 배는 더 들기에 비교적 일정한 직경이 나타나는 윗 부분을 베었다. 사람 키 높이로 잘린 그루터기를 보면 가운데에 살짝 패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스키 보드같은 발판을 끼우고 올라가 톱질을 한 자국이라 한다.


최근에도 강풍과 눈비에 기울어진 나무들 중에서 트레일에 가까운 나무들은 베어내는 작업을 계속 하는 듯 했다. 물론 작은 묘목들을 새로 심는 작업도 계속 이어진다. 빨갛고 노란 깃발이 꽃히거나 리본이 매달려 있는 장소가 많은데 이번에 잘 살펴보니 작은 묘목을 화분에 키우거나 옮겨 심은 장소였다. 옮겨 심은 작은 묘목을 보호하기 위해 얇은 망을 설치한 것도 특이하다. 생태계 관리의 원칙인 것인지 단순히 손이 모자라서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베어낸 나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도 신기하다. 잘려나간 나무 둥치에도 쓰러진 나무 줄기에도 새로운 생명이 깃들 것이라 보기 때문일까. 오래도록 받은 생명의 기운을 천천히 천천히 나누거라.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