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맑고 오후엔 살짝 빗방울이 흩날리는 일요일이다.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로 하고 장소를 고르다가, 어슐러 르 귄이 살던 골목길에 있던 마라탕집(Pixiu Mala Hongtang)에 가기로 결정했다.
관련 포스팅: 어슐러 르 귄이 거닐던 포틀랜드 거리를 걷다
포틀랜드 시내에 가는 김에 트라이언 크릭 복원사업 현장인 분스 페리 다리를 먼저 찾았다. 분스 페리 다리가 아직 구글 지도에 등록되지 않아 대충 지도에서 트라이언 크릭과 다른 하천이 만나는 부근을 찍고 찾아갔다. SW Boons Ferry Rd와 SW Arnold St이 교차하는 지점에 동영상에서 보던 다리가 보인다. 우리가 트라이언 크릭 공원에 가기 위해 항상 지나다니던 길에 있던 다리였다. 그 때는 몰랐다. 좀 더 일찍 알아보지 못한 게 아쉽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복원한 하천을 잠시 살펴보았다. 하천 옆 숲 속 큰 나무 옆에 낮은 지붕의 집이 보인다. 큰 나무가 개솔송나무(더글라스 퍼)인지 서양측백나무(레드 세다르)인지는 모르겠다. 다가가 살펴보니 ‘뒷마당 서식처(Backyard Habitat)’ 프로그램 인증을 받는 중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이 트레일을 걸어보기로 했다.
포틀랜드로 이동하여 어슐러 르 귄이 살던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집 주변을 거닐었다. 어슐러 르 귄의 집 뿐만 아니라 주변의 집들도 도로가와 뒷마당에 다양한 나무와 풀을 심어 가꾸고 있었다. 더글라스 퍼와 같은 높다란 나무를 보존하고 있는 집들도 많다. 경사진 곳에 집을 지었기에 뒷마당 역시 비스듬하게 꾸며져 있다. 뒷쪽 발코니에 앉으면 자기 집의 뒷마당뿐만 아니라 아랫집의 지붕과 정원이 눈에 들어올 듯 하다. 어슐러 르 귄의 집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보면 뭐 하는 거냐고 웃었겠지 싶다.
다시 도로를 따라 내려와 어렵게 차를 주차하고 마라탕집에서 꿔바로우, 마라탕, 마라샹궈(볶음)를 시켜 먹었다. 가장 안 매운 맛으로 선택해 먹었는데도 입이 살짝 얼얼하다. 한국 사람 말고도 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와서 맛있게 먹고 있던데 다들 괜찮은가? 어떤 남자 둘은 손님이 재료를 직접 바구니에 담아 식당 점원에게 넘겨주는 방식이 낯선 것인지 한참 지켜보다가 그냥 나가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몇 번 와봤는지 매우 능숙하다. 내가 주차하는 동안 식당 주인은 제이와 케이를 보자마자 한국말로 인사했다고 한다. 우리 일년을 포틀랜드에 살았어도 한국 기운이 안 빠진거야?
식당 주인이, 본인은 못 가지만, 여기는 빵과 커피가 맛있는 동네라고 알려주신다. 우리는 멀리 헤매지 않고 맞은 편에 있는 커피숍(Dragonfly)에서 드립 커피를 마셨다. 미국에서 드립 커피를 주문하면 직원이 직접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리 내려서 보온통에 담아 놓은 커피를 각자 알아서 따라마시도록 한다.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처럼 직원의 손이 가야 하는 커피는 좀 더 비싸다. 조그마한 카페에 노트북을 가져와 일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꽤 된다. 나무 탁자와 노란 빛으로 은은한 조명이 편안하다. 카페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도 독특하거나 멋있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그래, 여기는 포틀랜드.
집으로 돌아오기 전, 어슐러 르 귄의 집 앞에 있는 다리 밑을 흐르는 하천을 따라 조성된, 공원 트레일을 걸었다. 포틀랜드에서 가장 큰 자연공원인 포레스트 파크(Forest Park)의 끝자락이다. 트레일을 따라 가면 피톡 멘션, 재패니즈 가든, 오리건 동물원을 만날 수 있다. 지난주에 힐스보로에서 열린 야생 아트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오리건 조류 연합이 관리하는 야생동물보호지역(Collins Sanctuary)에도 이어진다. 비오는 일요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트레일을 걷고 있다. 조금만 걸어도 깊숙한 숲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쓰러진 큰 나무 둥치가 길을 막는 부분만 잘라낸 채 그대로 놓여 있다. 트레일 옆의 작은 개울에선 돌 사이를 흐르는 거센 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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