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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일년살이

포틀랜드 일년살이에서 가장 잘 한 일

포틀랜드에 온 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간다. 한국에서 기대했던 것만큼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보니 현지 주민과 수다를 떨며 친해진다거나 남들이 안 가는 장소에 가보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는 점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할 수 있지만 아마도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하지 않았을 경험을 우연히 또는 쉽게 해볼 수 있었다는 것.

누가 ‘당신이 포틀랜드 일년살이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뒷마당에 오는 야생 새를 위한 모이통을 설치한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도 아파트에서 앵무새를 키우거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새모이통을 설치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뭐가 특별한 일이냐고 되물을 듯 하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란 나는 새 소리는 들어본 적 있어도 야생 새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십년쯤 전 야생 새 관찰을 소재로 한 일본의 만화책 ‘토리빵’을 읽고서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우연히 아들과 죽이 맞아 새 모이통(bird feeder)을 주문하고 해바라기 씨를 채워넣었을 때의 숨죽인 기대가 아직도 기억난다. 참새처럼 작은 새들이지만, 한국에서 보기 힘든 미국 서북부 오리건에 주로 사는 새들이란다. 며칠 후 목 위가 검은 검은눈방울새(준코)가 왔다가 흥미 없어 떠나고, 머리와 가슴이 붉은 하우스 핀치가 찾아와 모이통을 건드리고, 쇠박새(치커디)가 경쾌하게 날아와 유리창에 붙인 먹이통에 앉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미 대륙에 흔하디 흔한 뒷마당 새들이 찾아오는데, 각기 선호하는 먹이터와 먹이가 다르다. 큰 소리나 진동을 만들면 소스라치게 놀라 떠나버리기에, 새들이 먹이를 먹고 있을 땐 창문을 닫은 거실에서도 걸음을 멈추어 있어야 한다.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싶어도, 창문을 닫아 놓고 줌을 당겨 찍어야 하니 새소리가 아닌 방 안의 소음이 소리를 채우거나, 정작 새의 형체는 희미하기만 하다. 낮은 포복을 하며 은폐와 엄폐를 거듭해도, 내가 찍는 사진과 동영상만으론 새를 바라보며 느끼는 편안함과 재미를 표현할 수가 없다. 바꾸어 말하면 거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후드득 나타난 새들이 불러일으키는 감동은 달리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 순간이 고맙다. 별 것 없이도 귀하다.

한국에 있을 땐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 소식에만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흔하디 흔한 뒷마당 새들을 보다보니, 도시에서 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우리는 흔하디 흔한 작은 새를 어디서 만나는가. 만나기는 하는가. 북미 대륙의 흔하디 흔한 새들을 아파트 발코니에 허접한 버드피더를 설치했다고 해서 바로 만나보는 것이 한국에서도 가능한 경험일까. 도시 내 모든 나무들을 모니터링하면서 뒷마당 나무도 임의로 베지 못하게 하는 도시에서 잠시 살아봄이 만든 감사한 기회다.

뒷 마당 새 관찰
발코니에 놀러온 친구들
새 모이통 잠시 치우기
일상
까마귀 떼와 작은 새들
뒷마당 새 관찰,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