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는 사람들은 개와 무척이나 친하다. 항상 크고 작은 개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공원에도 카페에도 헬스장에도 개를 데리고 온다. 그런 사람들을 보자니, 더 정확히는 한국에선 보기 힘든 커다란 개들을 보자니, 케이는 개를 키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일년살이 하는 가족이 어찌 개를 키우랴. 고양이는 또 어떻게 키우랴. 동물을 키우고 싶다구요. 해서 고심 끝에 발코니에 새 모이통을 설치해 보기로 했다.
지난 주에 아마존에서 구입한 새 모이통을 발코니에 달았다. 벽에는 작은 못 하나 박혀 있을 뿐이라서 모이통이 계속 벽에 부딪혀 기울어졌다. 시행착오 끝에 옷걸이를 구부려 지지대를 만들었다. 해바라기 씨앗이 주로 섞인 모이도 가득 넣어 주었다. 유리창에 붙이는 평평한 모이통도 구입했으나 일단 바닥에 내려 놓았다. 원통형 모이통과 바닥에 놓인 평평한 모이통 중에 어떤 게 더 효과가 좋을지 한 번 보자.
처음에는 새들에게 영 인기가 없었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머리 부분이 까만 (아마도) 검은눈방울새(Dark eyed Junco) 한 쌍이 빈번하게 방문한다. 우리는, 검은눈방울새라는 이름이 너무 길어서, 영어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준코’라고 부르기로 했다. 준코는 매달아 놓은 모이통보다는 바닥에 놓인 트레이를 더 좋아하는 듯 하다. 오늘 새벽에는 트레이에 담긴 해바라기 씨앗과 밀웜을 다 먹어서 케이가 아침에 새로 채워 두었다고 한다. 준코가 먹은 걸까? 아니면 다른 새? 새들이 어떻게 한 것인지 해바라기 씨앗은 바닥에 정신없이 흩뿌려져 있다. 바닥에 떨어진 씨앗 치우는 건 케이의 몫.
검은눈방울새는 북미 지역에서 미국지빠귀(American Robin) 다음으로 많은 새라고 한다. 어찌 세는지는 모르겠지만 2억 6천마리 정도 산다고 한다.
오늘 보니 머리 윗부분이 붉은 새도 왔다 갔다. 새 관찰 앱에서는 핀치 종류로 나오는데, 머리 윗부분만 붉으면 카생스 핀치(Cassin’s Finch)라고 한다. 조심성이 많은지 눈치만 보다 날아갔다. 수컷 핀치만 머리 윗부분이 붉고 암컷은 연한 갈색 빛을 띤다. 와우, 케이가 핀치가 새모이통에 걸터 앉아 해바라기 씨앗 발라먹는 동영상을 찍었다!! (핀치의 부리는 씨앗 껍질을 벗기기 좋게 진화되었다. 갈라파고스 군도에 사는 핀치의 부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생생하게 보여준 관찰 사례이기도 하다.) 핀치가 한두번 용기를 내더니 이제 자주 왔다갔다 한다. 검은눈방울새 준코의 둥지는 이 근처인 듯 한데 핀치는 좀 더 멀리 있는 듯.
참고로, 1800년대 전반기에 활동한 초기의 동물(새, 곤충) 분류학자인 존 카생(John Cassin)이 자신이 관찰한 (그동안 다른 핀치와 구분되지 않아 이름이 없던) 핀치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카생스 핀치는 다른 새(아메리칸 로빈 등)의 울음 소리를 잘 흉내낸다고 한다. 최근 카생스 핀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 멸종위기 관심 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더 관찰해보니 수컷의 배 부분까지 붉다. 배까지 붉으면 카생스 핀치가 아닌 하우스 핀치다. 많이 흔한 핀치로구나. 한껏 올랐던 흥분이 조금 가라 앉았다. 그래도 좋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우스 핀치라도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새가 아니냐.
몇 주 전에 심은 상추는 한번 크게 속아낸 후로 잘 자라지 않는 듯 하다. 원래 자라는 속도가 늦는 것인지? 며칠 전 사각 화분과 흙을 사와 들깨 모종을 심었다. 잘 자랄 것인지? 깻잎은 아직 따서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잎을 키워내고 있다. 사각 화분이 다섯개나 더 있어서 뭘 심을 수 있을지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근처에 흙이 가득이지만, 매장에서 파는 가드닝용 흙은 꽤 비싸더라. 새들이 화분 주위를 종종거리면 돌아다니다가 화분 위로 뛰어 올라 흙을 쪼아보다가 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멈춰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귀엽고 편안하다. (20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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